간첩 잡던 국정원, 왜 수사권을 경찰에 넘겼을까
국가정보원은 오랫동안 '간첩을 잡는 기관'으로 상징돼 왔다. 특히 냉전 시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국정원의 주 임무는 북한 간첩 활동을 차단하고 체포하는 일이었다. 실제로 1970~80년대에는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가 전국 단위의 대공 수사를 통해 수많은 간첩을 적발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임무는 경찰로 이관되며, 국정원은 사실상 '수사기관'이 아닌 '순수 정보기관'으로 재편되고 있다. 2024년 12월 31일부로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이 완전히 종료되면서, 60년 이상 유지되던 대한민국의 안보 수사 체계에 중대한 전환점이 생긴 셈이다.
정치 개입 논란이 부른 수사권 박탈
국정원이 대공 수사권을 상실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2012년 제18대 대선을 전후해 불거진 정치 개입 사건이었다. 당시 국정원이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여론을 조작한 정황이 드러났고, 이는 국가 정보기관이 민주주의 절차에 개입한 심각한 사례로 인식됐다.
이후 국정원 개혁 요구가 거세지며, 2020년 12월 문재인 정부 주도로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 법은 국정원이 향후 국내 정치에 일절 개입하지 못하도록 명문화했으며, 핵심 내용 중 하나가 바로 '대공 수사권의 경찰 이관'이었다. 유예 기간 3년이 주어지며, 2024년 말까지는 기존 체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간첩 수사, 경찰이 감당할 수 있을까
대공 수사는 일반 범죄 수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가 전복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은 매우 은밀하게 진행되며, 장기간에 걸친 정보 수집과 인내심 있는 추적이 필수적이다. 특히 최근에는 사이버 공간을 통한 교신, 암호화 기술, 위장 조직 등 간첩 활동이 고도화되고 있다.
국정원은 오랜 기간 이러한 수사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며 국내외 정보망, 인적 네트워크, 디지털 분석 능력까지 쌓아왔다. 반면 경찰은 일반 범죄 수사에는 익숙하지만, 국가 안보 범죄에 대한 수사 노하우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물론 경찰청은 안보수사국을 신설하고 국정원 출신 인사를 영입하는 등 수사력을 보완하려 하지만, 일선에서는 여전히 우려가 제기된다. “간첩 수사는 말처럼 쉽지 않다”는 목소리는 현장의 실감이다.
국정원은 정보기관으로 변화 중
국정원은 수사권을 내려놓는 대신 대북·대외 정보 수집과 분석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있다. 이는 CIA나 MI6처럼 국내보다는 해외 정보 활동에 주력하는 '순수 정보기관' 모델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정보 수집만 하고 수사를 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국정원이 첩보를 확보해도 직접 체포나 압수수색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건을 경찰 등 다른 기관에 넘겨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응 속도가 늦어지거나, 책임이 모호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보와 수사가 분리될 때의 한계
과거 국정원은 정보 수집과 수사를 한 기관 내에서 동시에 수행했기 때문에 효율적이었다. 첩보 확보부터 구속까지 일관된 대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은 정보 수집보다는 사후 수사에 초점이 맞춰진 조직이다.
이로 인해 실시간 대응력이 떨어질 수 있으며, 초기 첩보를 놓쳐 간첩 활동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할 위험도 존재한다. 수사를 병행하지 않는 정보기관의 한계가 점점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권에 따라 바뀌는 정보기관의 위상
국정원의 수사권 박탈은 단지 제도 변경이 아니라, 정권의 정치적 판단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차단하는 데 집중했고, 그 결과로 수사권 분리 정책을 추진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안보 위협이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국정원의 수사 기능 축소가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사이버 해킹, 유튜브 선전전, 사회 운동 침투 등 북한의 전략이 다변화되는 상황에서 수사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판단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국정원의 수사 기능은 반드시 복원돼야 한다”고 강조했고, 여당은 이를 되돌릴 법 개정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미 법적으로 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간 상황에서 이를 되돌리는 데는 상당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간첩은 줄지 않았는데, 수사 역량은 약화됐다
2022년 제주 해녀를 포섭한 간첩 사건, 2023년 경기남부 간첩단 사건 등은 모두 북한의 현재진행형 첩보 활동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들 사건은 국정원이 적극 개입해 밝혀낸 사건들이며, 그 수법은 점점 더 은밀하고 복잡해지고 있다.
하지만 2025년부터는 이러한 사건에 경찰이 전면 대응하게 된다. 경찰은 전국망 조직을 통해 접근성이 뛰어나지만, 은밀한 첩보전이나 공작 활동에 대응하는 데 있어 국정원만큼의 전문성과 경험을 갖추긴 어렵다.
안보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위협을 사전에 감지하고 차단할 수 있는 역량이 약해진다면, 결국은 피해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사후 수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정보기관 없는 안보, 과연 안전한가
대한민국은 여전히 북한과 대치 중이며, 정전 상태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있다. 간첩 활동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도 진행 중인 안보 위협이다. 그런데도 이를 수사할 전문 기관이 약화되었다면, 그 피해는 국민 전체가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간첩은 과연 사라졌는가?”, “정보기관 없는 안보는 정말 안전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정부와 국회, 그리고 사회 전체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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