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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방위비 증강과 한일 관계

일본의 방위비 증강과 한일 관계

일본은 최근 몇 년 사이 방위비를 대폭 증액하며, ‘전수방위’ 원칙에서 점차 벗어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22년 말 일본 정부는 5년간 총 43조 엔(약 430조 원)을 국방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해온 방위 중심의 군사 정책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안보 전략을 추구하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와 같은 정책 변화는 단순한 국방력 강화 수준을 넘어, 동북아시아 전체의 안보 지형과 외교 관계에도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한일 관계에 있어 과거사 문제, 영토 분쟁, 경제 협력이라는 복합적 요인 위에 군사적 긴장감까지 더해지며, 관계 재조정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일본의 방위 전략 변화와 그 배경

일본의 방위비 증액은 단지 국내 군사력 증강을 위한 조치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의 군사력 확장,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러시아와의 긴장 고조 등 복합적인 안보 위협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나온 결정이다. 일본은 이제 단순한 방어를 넘어서, ‘반격 능력(counterstrike capability)’ 확보를 명시하며 적의 미사일 기지를 선제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 하고 있다. 특히 2023년 개정된 ‘국가안전보장전략’, ‘국방전략’, ‘방위력정비계획’은 일본의 안보 정책 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도 맞물리며, 일본을 중국 견제의 핵심 파트너로 삼으려는 워싱턴의 의도와도 연결되어 있다.

일본의 방위비 증강과 한일 관계

한국 안보 정책과의 충돌 및 조율

일본의 방위 전략 변화는 한국과의 안보 협력 체계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한미일 3국 간 안보 공조 강화는 북한 핵 대응 및 동북아 안정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공유하지만,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는 한국 내 일부 정치세력과 국민 정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일본이 자위대의 활동 영역을 넓히며 역외 작전을 검토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자국의 군사 주권과 한반도 중심의 안보 전략을 더욱 정교하게 조율해야 한다. 특히 2019년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 잠정 종료 논란은 군사협력이 얼마나 민감한 사안인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현재는 협정이 유지되고 있지만, 일본의 군사 정책 변화는 협력의 명분과 형태 모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역사 문제와 군사 협력 간의 균형

한일 간 군사 협력은 단순한 안보 이해를 넘어, 과거사에 대한 역사 인식과 직결되어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일본의 방위비 증강은 국내 보수층에서는 환영받는 분위기지만, 한국에서는 제국주의 회귀 우려와 함께 경계의 시선이 공존한다. 특히 독도 영유권 주장, 교과서 왜곡, 위안부·강제징용 문제는 여전히 양국 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로 남아 있다. 이러한 역사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이 군사력을 확대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불신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로서는 안보 협력과 역사 갈등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정교한 균형 외교가 요구된다. 특히 국내 여론을 반영한 신중한 접근이 필수적이다.

경제 협력과 안보 협력의 교차 지점

한일 관계는 단순히 외교나 안보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양국은 상호 주요 무역 상대국이자 공급망 안정화에 있어서도 협력의 여지가 큰 국가다. 2019년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로 시작된 경제 갈등은 양국 경제의 상호 의존성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줬다. 이후 양국은 정상 간 교류를 통해 점진적인 해빙 무드를 조성해왔으며, 2023년 이후에는 외교정상화와 경제 협력 복원이라는 공동 의제를 내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방위비 증강은 경제 협력에 대한 신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방산 분야의 협력 가능성 확대, 기술 보안 문제, 전략물자 공동 관리 등에서 정책 조율이 필요하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방위산업과 같은 전략 산업에서의 협력이 한일 간 외교와 경제를 잇는 교차점이 될 수 있다.

동북아 안보 재편과 한국의 외교 전략

일본의 방위비 증강은 단순한 국가 안보 차원을 넘어서, 동북아 전체의 안보 지형을 재편할 수 있는 중대한 변수가 된다. 중국, 북한, 러시아와의 관계 속에서 일본이 적극적인 군사적 역할을 추구할 경우, 이 지역의 군사적 긴장도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이런 변화 속에서 한미일 공조와 남북 관계, 그리고 미중 갈등 속 전략적 모호성 사이에서 복합적인 외교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 또한 국제사회에서의 다자 외교,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에서의 협력, 인도-태평양 전략 내 역할 설정 등도 한국 외교의 중장기적 과제가 된다. 일본과의 관계 역시 갈등을 전제로 한 대응이 아닌, 상호 존중과 이익 균형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신중하고 능동적인 외교 재조정이 필요한 시점

일본의 방위비 증강은 한국 외교에 있어 도전이자 기회의 요소를 동시에 지닌다. 역사 갈등, 군사 전략, 경제 협력이라는 복합적 조건 속에서 양국은 감정이 아닌 전략적 판단을 통해 관계를 재설정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 무엇보다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상호 소통, 정보 공유, 그리고 지역 평화 유지에 대한 공동 의식이 필요하다. 한국은 안보와 외교의 분리 접근보다는 통합적 관점에서 외교 전략을 전개해야 하며, 일본과의 관계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재정립될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성실한 외교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